생각의 지도 – 동서양의 생각의 차이는 왜?

올해부터는 심리학 관련 책을 남는 시간때마다 읽어보려고 합니다. 작년부터 전공수업때 스치듯 들었던 책들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결국 올해 3월이 되어서야 읽기 시작하네요. 먼저 고른 책은 일단 얇은 ‘생각의 지도’라는 책입니다.


'The Geography of Thought' BookCover
The Geography of Thought: How Asians and Westerners Think Differently...and Why

생각의 지도는 2004년에 나온 책으로 꽤 유명한 책(인데 이제 본 저는ㅠㅠ)으로 동서양 사람들이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왜 그런지에 대한 책입니다.

지금이야 동서양 사람들이 서로 생각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네요. 서론에서 저자 역시도, 이전에 서양인을 연구한 결과로 쓴 책이 제목이 ‘인간의 추론’이였답니다. 그 책의 제목이 ‘서양의 추론’이 아니였던 이유는 문화가 달라도 동일한 추론규칙을 사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고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래도 저는 책을 읽기전부터 배경지식으로 아래 내용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 동양: 전체론적, 집단주의, 환경중시
  • 서양: 환원주의, 개인주의, 개인중시

하지만 위의 내용은 모두 결과론적인, 즉 관찰할수 있는 것들뿐입니다. 사실 이러한 차이의 정확한 원인에 대해 딱히 알려고 하지 않았었는데요, 이 책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고대 중국과 그리스의 서로 다른 생태환경이 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은 대체로 농경에 적합했고, 농경(특히 쌀농사)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화목이 중요하죠. 하지만, 그리스는 농업보다는 사냥, 수렵, 무역(+해적) 등이 더 적합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딱히 공동체가 생겨날 일이 없었던 것이죠. 이러한 설명을 읽고 나니, 우리 사회가 서양화되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책에서도 몇가지 소개되고 있지만, 서양인과 동양인의 측정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여러 심리학 실험들이 있습니다. 저는 공부하다 가끔 그런 실험들을 가끔 보게되는데, 재미삼아 했다하면 대부분 서양인쪽의 결과가 나와서 항상 놀라곤 합니다-0-;

어느쪽이 더 비슷해 보이나요? 한국대학생들은 Group 1을, 미국대학생들은 Group 2를 골랐다네요.

영어권은 물론이고 유럽에도 못 가본 제가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궁금했었죠(물론 실험에 있어서 개인차는 존재합니다만;;) 그런데, 책에서 나오는 이민 2세대와 홍콩사람들에 대한 연구에서 그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동양/서양 연구에 있어서 홍콩사람들과 이민 2세대들은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홍콩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를 제시했을 때, 영어로 푸는 것과 중국어로 풀 때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하는 부분은 신기하죠. 저도 아마 이와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요…

저처럼 이런 괴상한(..) 런처 쓰시는분 없죠?;;

요즘 핸드폰, 아이패드, 노트북에서 거의 대부분 해외 어플리케이션을 쓰고 영문기사를 읽(으려고 노력하)고, 한국 드라마는 안보고 미국 드라마는 보고… 어쩌다보니 한국컨텐츠와는 멀어지고 서양의 컨텐츠를 대부분 소비하는 지금, 서양쪽으로 나올 확률이 높아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사실 망상에 찬 확대해석일수도 있어요…) 덤으로 말하자면, 제 주소록은 완전 서양식입니다;; 주변에서 제껄 보면 부모님이나 친척을 이름 그대로 저장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을거라고들 말하죠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어떻게 변해갈지에 대해서 동양과 서양이 조금씩 닮아가며 중간쯤에서 수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는 각각 장단점이 있고, 서로의 장점을 수용해서 공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장미빛(?)전망인데요. 굳이 저도 고르자면, 문화가 충돌하기보다는 수렴해서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금방 그렇게 합쳐질 것 같지는 않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죠…?ㅎㅎ

생각의 지도8점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김영사

덧) 250쪽도 안되서 읽기는 금방 읽었네요ㅎㅎ
덧2) 왠지 글 쓰는 시간이 더 오래걸릴듯한 느낌이;;
덧3) 위에서 나온 런처는 Aviate라는 런처입니다

국민참여재판?

새누리당에서 축소한다고 이야기가 있었던(이놈들은 진짜 거꾸로 갈 줄밖에 모르는지;;) 그 국민참여재판(배심원제)입니다. 학교에서는 범죄심리학 과목에서 배웠었죠. 배운지 얼마 안 됬기도해서, 한번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정리해보도록 하지요.

뭘 하는 걸까?

배심원은 7인,9인으로 구성되고 무작위로 선발된다고 합니다. 선발과정에서 처음에 상당히 많이 뽑는데, 엄청나게 걸러내기 위함이죠;; 사건 등에 대해서 질문도 이것저것 하고, 검사와 변호사가 배제해달라고 신청하기도 한답니다. 여기서 떨어지면 소정의 수고비(!)를 받고 집에 가고, 통과한 분들은 배심원단이 되어 재판장까지 간다고 하네요.

재판이 끝나면 배심원단들은 다른 방에 모여서 의논을 하는데, 이를 평의(deliberation)라고 합니다. 의논이 끝나면, 유죄/무죄 판결을 내리는데 이를 평결(verdict)이라고 하죠. 평결은 만장일치 원칙인데, 의견이 안 맞으면 재판부와 의논 후에 다수결로 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평결을 내릴 때, 판사와 의논해서 양형까지 포함시킨다고 합니다(미국은 대부분 유죄/무죄만 판정하고 양형은 판사가 한다죠) 참고로, 우리나라의 판사와 배심원과의 평결의 일치율은 92%(2008년~2012년 848건 분석 결과)로 엄청 높은 편입니다(미국은 70%대)

2008년 제정, 그리고 2013년 최종안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배심원의 판단(평결)이 그렇게 큰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았는데요(즉, 평결에 대한 기속력이 없었죠) 2013년까지 여러 부분이 개정되었습니다.

가장 큰 단점이었던 평결에 대한 기속력에 대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재판을 기록할 때, 배심원단의 평결과 배심원단 인원수를 적도록 변경되었습니다(그 전에는 평결을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는 거네요ㅠ)

배심원단의 인원수에서도 변경이 있었는데, 원래 5인, 7인, 9인이었던 2008년 안에서 5인을 삭제했습니다. 또한 만장일치 평결이 아닌, 다수결 평결에서는 3/4이상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수정되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의 신청은 ‘사형, 무기 또는 단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이상의 사건에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즉, 민사재판은 국민참여재판이 불가하죠. 또한 피고인이 신청을 하지 않아도 검사의 신청으로 국민참여재판이 가능해졌습니다.

비판과 반론

배심원제에 대한 비판은 우리나라보다는, 배심원제를 훠~얼~씬 먼저 도입한 미국에서 더 많은데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배심원들은 무지/무능하고 편파되어있다

배심원들은 CSI효과(지문,DNA같은 법과학증거를 결정적인 증거로 생각)나 실제 증거가 아닌 정보(기각된 증거 등), 그리고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증거에 가장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재판절차가 배심원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어려운 법률용어(-_-+)가 재판을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는 것이죠.

그래도 배심원들이 편파되어있다는 부분은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인종편파(백인-흑인)가 꽤 있다고 하네요.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도 평결 양상이 좀 바뀐다고 하는데요,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엄격한 평결(친검사성향)이라고 합니다. 이러니까 무작위로 뽑는 거겠죠?ㅎ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죠. 배심원 평결(그것도 만장일치;;)을 기다리는 시간과 배심원단으로 뽑힌 사람들 수고비 주는 것 등등 이런 것만 생각하더라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아래와 같은 의의와 필요성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면서 시행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국민참여재판의 의의와 필요성

  • 건전하고 다양한 시민이 참여함으로써 재판의 정당성에 대한 시민의 지각을 높일 수 있다 (법 절차의 민주성)
  • 판사 개인의 특성에 의한 영향을 저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 시민이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법체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높일 수 있다 (교육)

※ 관련링크

덧) 축소/폐지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ㅠㅠ
덧2) 글 쓰면서 본건데, 조선일보는 꽤나 부정적이네요;; 보는 순간 짜증이 확-_-+

창의성에 대하여

올해 3월부터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됐습니다. 뭐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에는 오랜만에 돌아갔네요. 이번 학기에 가장 기억 남는 강의라고 한다면, 인지심리학 과목에서 기말고사를 앞둔 시기에 들었던, 창의성에 대한 강의였죠. 그 명강의를 잊지 않기 위해서, 기억나는 대로 짧게 글로 남겨봅니다.

창의성의 정의?

우리는 항상 창의성이 중요하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창의성에 대해서 정의를 한번에 ‘이거다!‘하고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죠. 인지심리학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정의가 없지는 않습니다. 인지심리학에서 창의력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한 개인으로 하여금 특정 맥락 하에서 새롭고 동시에 적절한 사고 혹은 행동을 하게끔 해주는 기본적 인지 처리, 핵심적 분야 지식, 그리고 환경적 개인적, 동기적 요소들의 결집 결과

참 거창한 말이지만, 잘 모르니까(!) 저렇게 두리뭉실한 정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재즈 음악가인 찰스 밍구스는 창의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간단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보통 일어나는 일이다.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그것도 엄청 간단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창의성이다.[note][/note]

물론 위의 정의가 학술적인 정의는 아닙니다만, 창의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명언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창의적이라는 건?

창의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새로운 건 아닐 겁니다. 우리가 ‘창의적인 혁신‘이라고 하는 것들은 조금씩 더 발전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팟아이폰이 있겠죠.

아이팟이 나오기 이전에도 MP3가 존재했었고,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도 스마트폰은 존재했습니다. 즉, 기존에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이런걸 보면, 우리가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할 때, ‘전혀 새로운 것’을 바라는 건 아닐 겁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상황에서 기존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창의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창의적으로 되려면?

위에서 알아낸 바에 따르면, 창의적으로 되기 위해서, ‘알고 있던 정보를 잘 사용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능력이 바로 ‘유추‘이고, 이 ‘유추’는 ‘은유‘를 통해 가능해집니다.

  • 유추: 하나의 문제 혹은 상황으로부터 주어진 정보를 관련 있게 유사한 다른 문제 혹은 상황으로 전이시키는 추리
  • 은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이어 붙여서 연관성 만들기

그러니까, 은유를 많이 경험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 은유는 정서를 동반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서가 없으면 은유도 없고, 은유가 없으면 유추도 없고, 유추가 없다면 창의적인 사고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거죠. 이 부분에서 우리는, 정서도 창의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성적인 판단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거겠죠..

하지만 우리를 덜 창의적으로 만드는 사회

여기까지 알았다면 이제 창의적으로 될 수 있겠다 싶지만, 사실 도처에 방해요소들이 숨어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를 창의적으로 만들어준다는 ‘은유’는 우리가 많이 배제하고 살고 있을 겁니다. 왜냐면 우리 사회는 은유를 원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죠.

은유는 빠른 판단이나 쉬운 판단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또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하고, 은유를 사용하는 것은 좀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느린 판단과 실수에 관대하지 않죠.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1+1의 답은 왜 2일까?‘에 고민하게 해주는 환경이 아니였던거죠.

결론: 책 좀 읽고, 기분전환 합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창의적인 인재가 되라고 합니다(나쁘다 정말!ㅠ)

위에서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은유를 많이 경험하려면 은유가 담긴 책을 읽으면 됩니다. 특히 시집을 읽으라고 하셨고, 그거라도 안되면 다른 문학 책이라도 읽으라고 하시더군요. 물론 연극, 영화도 제발 많이 좀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서적인 측면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즐거울 때 가장 잘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가끔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미해결된 문제가, 휴식을 취하다 갑자기 ‘아!‘하면서 그 해결방법을 깨닫는 순간이 있죠. 이런걸 보면, 창의적인 생각을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해 보입니다 🙂

※ 창의성과 관련해서 읽을거리(네이버캐스트 – 김경일)

덧) 이렇게 써봐야 제 학점은 음…ㅠㅠ

리틀알버트 이야기의 슬픈 결말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FMnhyGozLyE&rel=0]

대학에서 심리학을, 아니면 다른 이유로라도 조건형성에 대해서 배우셨다면 ‘리틀알버트’라는 아이에 대해 한번쯤을 들어보셨리라 생각합니다. 리틀알버트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다음과 같을 겁니다.

John Watson이라는 교수가 대학에서 일하는 직원의 아이인 Albert를 알고 있었다. 알버트는 너무 뚱~하게 반응이 없는 참 심심한 아이였다. 단 한가지인 큰 소리라는 자극만 빼면 말이다. 그런데 왓슨이 조수인 Rayner와 함께 알버트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였다. 그 내용인즉, 흰 쥐를 보여주면서 깜짝 놀랄만할 큰 소리를 내는 것이였다. 이렇게 5일동안 했더니 애가 흰 쥐를 무서워하는건 물론이고 다른 흰 털을 가진 동물들이나 흰 털코트, 왓슨의 흰머리 등등에도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흰 것에 대해 공포반응을 보이는 알버트는 어느날 사라졌다고 한다.

리틀알버트에 대한 이야기는 ‘갑자기 사라졌다’는 내용으로 끝납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알버트는 죽을때까지 흰 것에 대한 공포가 있었을까?’하는 의문을 남깁니다.

리틀알버트를 추적하다

2010년, BBC에서 Hall Beck박사가 리틀알버트의 행적을 추적한 내용을 방영하였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TV는 사랑을 싣고’를 찍듯이(…) 왓슨교수가 당시 있었던 Johns Hopkins 대학에서부터 조사해나갑니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지지만 ‘Albert B.’라는 이름은 실제 이름이 아닌것으로 판명됩니다.

당시 일하고있던 여직원들 중에 ‘B’로 시작하는 성을 가진 사람 중 조건에 맞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죠. 최종적으로 나이와 기혼여부 등을 판단해 본 결과 ‘Arvilla Merritte’라는 여성직원의 아들인 ‘Douglas Merritte’가 리틀 알버트임을 알게됩니다.

예상과는 다른, 슬픈 결말

리틀알버트의 실명과 1920년 미국의 인구조사 자료를 토대로 리틀알버트의 조카(Gary Irons)를 찾아내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알버트에 대해 들은 이야기는 의외의 슬픈 결말이였습니다.

Gary Irons는 6살(1925년 5월)때 알버트가 수두증(뇌수종)으로 죽었다고 말해줍니다. 영상은 메릴랜드주, 마운트에어리마을의 Locust Grove 교회 공동묘지에 있는 리틀알버트가 묻힌 묘를 찾아가는것으로 끝납니다.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KJnJ1Q8PAJk&rel=0]


사실을 알기 전에는 찾게 되면 궁금증이 풀려서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왠지 씁쓸한 느낌이네요.

덧) 시험공부할때 딴짓하다가 우연히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이제야 글을 쓰는군요.
덧2) 좀 더 자세히 설명한 영상으로 Little Albert Has Been Found도 있습니다.
덧3) 어째 실험하는 영상이 좀 강제적인것 같지 않나요?(…)